여행기는 마지막 글로 끝이지만, 현장에서 세션을 듣고 개인적으로 느낀 감상 및 세션 듣는 요령을 정리함.
1. 시간표 짜기
동시에 진행되는 세션이 많기 때문에 한국에 있을 때 미리 어떤 세션을 듣고 싶은지 정리해 가면 좋다. GDC 스케쥴 사이트(https://schedule.gdconf.com/sessions)에 들어가면 이렇게 세션 목록을 볼 수 있고, 여기서 관심있는 세션을 마킹해놓고 나중에 모아서 볼 수 있다. 왼쪽 아래에 보면 'Topic'을 선택해서 관심 있는 토픽을 필터링해서 볼 수도 있다. 하나만 찍어 봐도 충분히 많은 세션이 있으니 천천히 보고 결정하자.
대학교 수강신청 같은게 아니기 때문에 시간이 겹치는 여러 개 세션을 마킹하는 것도 가능하다. 일단 괜찮아 보이면 다 담아놓고 시간대별로 나중에 생각해보고 걸러내도 된다. 특히나 아래에서 언급할 '낚시성 세션' 때문에라도 한 time slot에 두어 개 정도는 담아두는 것을 추천.
제목을 누르면 세션의 상세 페이지로 이동하는데, 여기서 해당 세션의 설명, Takeaway, 대상 청중을 명시하고 있다. 대략 강의 계획서라고 보면 되는데, 듣고 싶은 세션이 있다면 그 세션의 상세 페이지는 꼭 읽어보는 걸 추천한다. 대략 어떤 방향으로 발표가 진행될지 생각해 볼 수 있다.
실제로 현장에 가서 가장 도움이 많이 되는 것은 GDC 공식 앱이다. 개인 시간표 조회 기능이 있는데, 이 기능이 제일 쓸모 있다. 이 외에도 세션 시간 직전에 푸쉬 알림을 쏴주기도 하고 (살짝 스팸이긴 하지만 있는 게 훨씬 나음) 약간 페이스북 느낌의 인싸들을 위한 SNS 기능도 있었는데 이 부분은 사용해보진 않았다.
2. 낚시성 세션
그럴싸한 제목으로 사람들을 유인해서 자기 제품 광고하는데 써먹는 세션, 이야기는 장황한데 사실 알맹이는 별로 없는 세션들도 있다. 나는 이런 것들을 '낚시성 세션'이라고 부르는데, 이런데 붙잡혀 있으면 시간 낭비다. 될 수 있으면 피하도록 하자.
세션 세부 설명을 읽어보면 어느정도 감이 오지만, 항상 100% 피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경험적으로 봤을 때 이런 세션들은 허위 매물처럼 여러 가지 red flag를 세우는데, 나는 아래와 같은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 매우 힙하고 포괄적인 설명으로 멋 모르는 뉴비의 주목을 이끈다.
- 제목에 'Presented by OOO' 가 포함되어 있으면 살짝 광고끼가 있다. (아닌 세션도 많지만)
- 현장에 들어가 보니 슬라이드 제목이 세션의 이름과 다르다.
그리고 대부분 이런 세션들은 vault에 무료로 풀린다. 따라서 세션 시작하고 10분 이내에 (인사 + 도입부가 끝나고) 계속 들을지 말지 빠르게 판단하자. 탈출을 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으면, 시간표 짤 때 생각해둔 동시간대 2, 3순위 fallback 세션들로 빠르게 퇴각하자.
참고로 눈치 보지 말고 그냥 막 나가도 상관없다. 예전의 나처럼 재미없어서 나가고 싶지만 발표자에게 '예의상', '눈치 보여서' 못 나가고 우물쭈물 해 있을 사람도 있을 텐데, 그냥 나가면 된다. 세션 70% 이상 지났는데 중간에 나가는 사람도 있었고, '코딩 세션은 아닙니다'라는 슬라이드를 보자마자 짐 바리바리 싸들고 뛰쳐나가는 사람들도 많았다.
Shy Korean처럼 있으면 본인만 손해다.
3. 기록하기
나중에 GDC vault에 어차피 올라올 세션들은 굳이 필사적으로 공들여 노트를 작성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vault에 올라오지 않는 세션들도 간혹 있고, Slide만 올라오고 영상은 올라오지 않는 세션도 있다. 이런 경우 슬라이드가 제한적인 내용만 담고 있다면 중간중간 맥락이 건너뛰는 지점에서 무슨 말을 하는지 해석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이런저런 이유로 나는 실시간으로 들으며 기록해 두는 게 좋다는 생각이다. 나중에 기억하기에도 좋고 세션 직후에 내용 복기할 때 용이하기 때문.
아래는 현장에서 세션을 들으면서 기록하는 데 사용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방법들을 나열해본다.
3.1. 노트 작성
각자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노트 프로그램을 하나 손에 익혀놓으면 좋다. 이때 나는 vscode에 markdown 포맷으로 정리했는데, 다른 어떤 사람이 OneNote를 잘 사용하는 것을 보고 나중에 갈아타서 현재는 OneNote를 주력으로 사용하는 중.
노트를 적을 땐 영어 문장을 word-by-word로 적으려고 하지 말고, 본인이 가장 쉽고 빠르게 적을 수 있는 포맷으로 옮기는 게 좋다. 기술적인 내용을 많이 자랑하려는 세션일수록 제한된 시간에 많은 내용을 넣고 싶어서 발표 속도가 빠른 경우가 많다. 따라서 말하는 속도와 슬라이드 넘기는 속도가 많이 빨라질 수 있는데, 이때 영타&영작에 익숙하지 못한다면 필기 속도가 발표 속도를 못 따라갈 수 있다. 작성하는 문장이 이쁘지 않게 느껴지더라도 일단 뇌의 힘을 가장 적게 쓰는 빠른 포맷으로 적는다. 세션 중간에는 따라가는 게 중요하니까. 문장이 무엇을 이야기하는지 정보만 알 수 있다면 형태는 나중에 이쁘게 다듬을 수 있다.
이때 작성하는 문체가 번역체, 보그체처럼 부자연스러울 가능성이 높은데, 그런대로 일단 적자. 네이티브 영어 화자라면 문장 자체를 기억하는데 별로 큰 힘이 들지 않겠지만 (한국인이 한국어 문장을 듣자마자 바로 똑같이 이야기하는데 별로 힘이 들지 않는 것처럼) 영어를 외국어로 배운 사람 입장에서는 어떤 문장을 들었을 때, 그 뜻을 이해하고 나면 해당 정보만 머릿속에서 맴돌지, 문장 자체의 디테일은 기억이 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때 머릿속에 있는 이 non-language-specific 한 정보를 한국어로 작성하는 게 제일 빠르다. 다만 몇 가지 번역하기 애매한 단어들, 대개 전문용어나 형용사들은 바로바로 대응되는 한국어 단어가 생각나지 않는 경우가 있는데, 이땐 그냥 영어 단어를 그대로 적던가, 아니면 영어 발음을 한글로 빨리 적고 넘어가도록 하자.
3.2. 사진 찍기
위에서도 언급했듯 대개 세션 시간이 내용에 비해 짧은 경우가 있다. 강연자들이 vault를 믿고 랩을 하면서 슬라이드도 휙휙 넘길 수 있다. 하나하나 전부 다 노트에 옮겨 담을 수 없으니 사진을 어느 정도 찍는 건 필수다. 위에서 적은 노트와 같이 세션 직후 내용 돌아볼 때 편리하다.
매우 중요한 점 한 가지를 언급하자면, 슬라이드 사진 찍을 때 무음 카메라 앱을 받아서 사용하자. 알다시피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에서 판매하는 휴대폰은 몰카 방지를 위해 사진을 찍을 때 무조건 소리가 나도록 되어있다. 슬라이드를 빠르게 넘기는 속도에 맞춰 연속적으로 사진을 빠르게 많이 찍을 텐데, 그때마다 우렁찬 '찰칵' 소리가 내 휴대폰에서만 나온다면 눈치 보이기도 하고, 신경 쓰일 수 있다. 이때 소리를 내지 않고 사진을 찍을 수 있는 방법을 미리 찾아가도록 하자. 아니라면 '왜 동아시아에서 판매되는 휴대폰은 사진 찍는 소리를 끌 수 없는지' 빠르게 영어로 설명해야 할 텐데, 그게 더 귀찮을 듯.
3.3. 녹음
뉴스 특파원처럼 바로바로 세션을 바로바로 번역해서 뉴스 사이트에 속보로 올려야 하는 사람 아니면 굳이 필요하진 않을 텐데, 세션 전체를 녹음하는 방법도 있을 수 있다. 보통 컨퍼런스 홀 맨 앞쪽에 마이크를 배치하는데, 이 주변에 앉으면 녹음 퀄리티가 괜찮다.
4. 보고 느낀 점
유니티나 언리얼 엔진과 관련된 이야기는 생각보다 그리 많지 않았다. 대부분 아직 각자 엔진을 만들어 쓰는 경향이 남아 있어서 그런것 같음. (어차피 큰 스케일의 게임을 만들 거면 고쳐 써야 하는 건 필수 기도 하고) 각자가 처한 상황에서 적절한 방식으로 문제 해결을 하는 approach를 보고 배울 수 있어서 좋았다. 대부분의 큰 맥락은 비슷하기도 했고. (캐시라인 깨 먹지 말 것)
유니티나 언리얼 엔진 specific 한 이야기는 Unite와 Unreal Fest에서 듣는 게 맞다.
질문을 많이 한다. 매 세션마다 적어도 4개 이상의 질문이 던져진 듯. 이게 한국과 분위기랑 가장 많이 다르다고 느낀 점이다. 이전까지는 나도 학교에서나 컨퍼런스에서 애매하게 궁금한 점이 생기면 '이런 걸로 질문하긴 좀 그런데', '에이 요건 나중에 다시 정독하면서 검산해보면 알게 되겠지. 일단 나가자'라는 생각을 하면서 내 짐을 챙기며 자리에서 일어나기만 했다. 물론 나중에 다시 찾아본 적도 없었고.
현장에서 직접 다른 사람들이 중요한 질문, 이상한 질문들을 영어를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 막 던지는 걸 보면 지금까지 괜히 질문을 삼키고 살았다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하게 되었다. 이때 이후로 나도 질문을 많이 하려고 하고 있다. 관련 맥락이 머릿속에서 살아 있을 때 질문 잘 하자.
한 달 뒤 NDC 세션을 듣는데 궁금한 점이 생겨서 질문을 던져 보았다. 한국에서는 (마이크를 쥐어주면 사람들이 질문을 안 해서 그런지) 이렇게 웹사이트에서 질문을 하도록 되어있는데, 안타깝게도 묻혀버리고 말았다. 직접 자리에서 마이크 잡고 물어봤으면 어떠한 형태로라도 대답이 돌아왔을 텐데 아쉽다.
말 거는 분위기가 정말 자유롭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이건 모르는 사람이랑 small talk을 많이 하는지 안 하는지에 따른 문화 차이에 더 가깝긴 한데, 그냥 지나가는 사람들끼리 만나서 대화를 한다. '너는 무슨 개발을 하니', '이 게임이 어떻니 저쩧니' 등등. 심지어 화장실 기다리는 줄에서도. 이후에 미국, 유럽 여행을 더 하면서 이게 그냥 자연스러운 분위기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당연하게도, 영어 연습을 더 많이 해야겠다고 느꼈다. 이 때는 한국식 수능 영어에서 벗어나, 외국인 붙잡고 영어로 떠들기 시작한 지 한 달도 마저 채 안된 타이밍이라, 듣기에 비해 말하기 실력이 매우 떨어졌다. 이처럼 쉽게 stranger와 이야기할 수 있는 분위기에 있을 수 있는 기회를 잘 살리려면 기술적인 주제를 영어로 풀어나갈 수 있어야겠다는 교훈을 얻었다.
5. 그래서 돈 값 함?
선 요약:
- 개인의 입장에서 매년 방문하기엔 비싸다. 이쪽에 커리어가 있다면 여행 일정에 끼워서 한 번쯤은 해볼 만 함.
- 회사 입장에서 reward 차원으로, 영어 강의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들을 모아 분대 단위로 보내면 좋을 듯.
각자 파트를 맡아서 여러 세션의 정보를 수집하게 하고 (non-deterministic turing machine처럼)
사내 세미나로 발표하게 한다면 팀 내 개발력과 개발 hype를 유지는데 좋다는 의견.
누가 돈 값 하냐고 물어본다면, 그건 각자의 가치관에 따라서 다르겠지만, 나는 이 쪽에 커리어가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참관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그 비싼 돈 주고 가서 들을 값어치가 있냐? 어차피 나중에 유튜브에 다 올라오잖아'라고 말할 수 있다. 사실 틀린 말은 아니다. 나도 직접 가서 보고 들은 세션보다 유튜브에서 봤던 세션들이 더 많으니까. 게다가 영상 형태로 올라온다면 빠르게 필기할 필요도 없고, 천천히 본인 pace에 맞춰서 천천히 보는 것도 가능하다. 좀 더 제한된 환경에서, 나중에 유튜브에서 볼 수 있는 세션을, 수백만 원 하는 돈을 내고 태평양 건너가서 보는 게 돈 아깝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근데 GDC vault에 있는 영상 진짜로 봅니까? 영어라서 못 봤다고 치면, NDC Replay에 있는 관련 세션은 많이 보고 있나? 만약 그렇다면 할 말은 없지만(...) 나는 예전에는 잘 안 봤었다. 반면에 이번 기회를 통해 실제로 보면서 좀 더 relatable해진 세션들은 더 찾아보기도 하고 기억에도 오래 남았다. 이때 이후로 모르는 게 생기면 관련 세션을 찾아보는 데에 거부감이 없어졌다는 게 가장 큰 asset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예전에 카메라 시스템에 대한 레퍼런스를 찾아볼 때, 유니티 시네머신 내부 소스코드와 함께 아래 발표자료들을 많이 참고했고, 큰 도움이 되었다.
마지막으로, 현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분위기가 있다. 종종 매너리즘에 빠질 때 옆에 비슷한 일을 하는 peer와 이야기를 하는 것만으로도 개발 hype를 끌어올릴 수 있는 경우가 있는데, GDC 참관이 좀 더 큰 범위에서 비슷한 역할을 해준다고 느낀다.
이상으로 지난 2018년에 GDC에 참관했던 경험을 짧은 글로 풀어보았다. 혹시나 미래에 참관을 생각하고 있는 사람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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